세계 최고의 골키퍼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자는 반사신경, 클린시트 횟수, 리더쉽등을 최고로 갖춰야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929년(소련 해체전), 모스크바에서 모든 조건의 부합하는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가 탄생한다.
디나모 모스크바 원클럽맨으로 컵대회 포함 리그에서만 326경기에 출장하여 160번의 클린시트, 단 254골만 허용하며 '골키퍼' 포지션으로 축구선수로써의 최고 영예인 발롱도르를 수상하였고, 패널티킥 선방만 300번중 150번,
소련 국가대표팀에서도 24살의 어린 나이에 첫 차출되어 총합 71경기를 뛰며 24번의 클린시트, 무려 68골만 허용하는 괴물같은 능력을 지닌 소련의 '검은 거미'
오늘은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는 소련의 '레프 야신' 선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로필]
이름: 레프 이바노비치 야신 (Лев Иванович Яшин/Lev Ivanovich Yashin)
생년월일: 1929년 10월 29일
국적: 소련 소비에트 모스크바
신체: 190cm / 82kg
포지션: 골키퍼 (GK)
클럽: 디나모 모스크바 (1950~1971)
[커리어]
모스크바의 보고로드소코예 구에서 공장 노동자인 이반 페트로비치 야신과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야시나의 아들로 야신이 태어났다.
1940년에 가족을 따라 포돌스크로 이사했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독소 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울리야놉스크에서 군수 공장에 다니며 생산직 견습으로 종사했다.
이때 공사일이 끝난 후 직원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처음 축구를 접했으며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9년, 디나모 모스크바의 당시 감독인 알렉산드르 체르니시요프의 추천으로 디나모 모스크바의 유스팀에 입단하게 된다.
이후 이듬 해에 성인팀 선수로 승격되었으나 1950/51시즌 단 2경기에만 출전하며 1953년까지 단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였다.
당시 축구를 할 일이 없자 디나모 모스크바의 아이스하키 클럽에서 아이스하키 골텐더로 활약하였는데 이곳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디나모 모스크바 소속 1953 소비에트컵 우승, 52/53시즌 아이스하키 톱 리그 3위에 오르게 된다.
이로 인해 1954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의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자신은 축구에 집중하기로 하여 대표직을 거절하게된다.
1953/54시즌 아이스하키에서의 활약과 당시 '호랑이' 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알렉세이 호미치가 1953년 '스파트라크 민스크'로의 이적으로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그를 주전골키퍼로 기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란듯이 53/54시즌 24경기 출전 11개의 클린시트와 20개의 골만을 허용, 데뷔전이었던 디나모 키예프와 1대1 무승부 이후 9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쌓으며 미친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였다.
또한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A매치 경기에 차출되며 데뷔전이였던 스웨덴전 1,2차전 역시나 7대0, 6대0 승리로 클린시트를 쌓았다.
55/56시즌은 리그에서는 19경기 출전 29골 허용과 5개의 클린시트로 살짝 부진했지만 올림픽의 차출되어 1차전 독일전과 4강 불가리아전 1실점을 제외하곤 전부 클린시트를 해내며 소련의 올림픽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이어지는 A매치에도 차출되어 독일전 3대2 승리와 당시 세계 최강 '매직 마자르' 헝가리를 상대로 1대1 무승부를 거두는 등 좋은 성장세를 보였다.
56/57시즌, 리그에서 12경기 출전 7골 허용과 6개의 클린시트를 달성하며 주전 키퍼로써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월드컵 지역예선 폴란드와의 3차전중 2차전을 3대0, 2대0으로 막아내며 소련을 다음 라운드로 진출시키게 된다.
58/59시즌 리그에서 19경기 출전 15골 허용 8개의 클린시트로 리그 챔피언이 된다. 그리고 유로 1960에서 4강 헝가리 원정에서 1대0 또다시 클린시트를 하며 결승 진출을 이뤄냈고, 결승에서도 스페인에게 승리하며 유로 1960 챔피언이 된다.
그리고 그의 전성기라 불리우는 62/63시즌 리그에서 27경기 출전 단 '6골' 허용, 22개의 클린시트를 쌓으며 다시 한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리그에서 활약뿐만 아니라 A매치에서도 주전 골리로 활약하며 소련에게 수많은 승리를 안겨주었고 이듬해 1963년 골키퍼로써는 역대 최초 발롱도르 수상을 하게 된다.
발롱도르 수상이후 꾸준히 디나모 모스크바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리그에서는 항상 10단위 실점만을 기록하였고 이후 66/67시즌 소비에트 컵, 69/70시즌 소비에트 컵을 우승하였다. 하지만 66/67시즌 이후로 소련 국가대표팀에 더 이상 차출되지 않았고 올스타전 이후 1970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21년간의 축구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커리어 최종 스탯 & 수상]
[FC 디나모 모스크바]
소비에트 톱 리그: 1954, 1955, 1957, 1959, 1963
소비에트컵: 1953, 1967, 1970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0
하계 올림픽 금메달: 1956
[개인수상]
발롱도르 1위: 1963
발롱도르 드림팀: 2020
FIFA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1994
FIFA 월드컵 올타임 드림팀: 2002
UEFA 유로 MVP: 1960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60, 1964
USSR 올해의 골키퍼: 1960, 1963, 1966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63, 1964, 1966, 1967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
FIFA XI: 1963
FIFA 공로 훈장: 1988
FIFA 20세기 월드팀: 1998
FIFA 20세기 유럽팀: 1998
FIFA 20세기의 골키퍼: 1998
UEFA 주빌리 어워드: 2003
IFFHS 레전드: 2016
월드 스포츠 1950~1970년 월드 베스트 XI: 1970
+[개인 기록]
프로 통산 812경기 470클린시트
국가대표 78경기 70골 실점 24클린시트
FIFA 월드컵 12경기 11클린시트
1000회 이상의 1대1 찬스에서 50골 실점
150회 이상의 페널티 킥 선방
[플레이스타일]
말이 필요없는 실력이다. fifa 월드컵 골든 클러브의 초창기 이름이 '야신상' 이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또한 실력 있는 골키퍼에게 '거미손', '문어발' 등의 별명이 붙곤 하는데, 이러한 별명들의 시초가 바로 '레프 야신'이다.
현역 시절, 검정 천모자와 검은 옷에 검은 장갑을 끼고 나와서 당시로는 거인과 같던 190cm의 장신을 바탕으로 공격수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들어갈 법한 슈팅도 모두 쳐내는 신들린 모습을 보여주며 유명세를 덜쳤다.
또한 축구 골대의 좌우 상단 구석, 즉 골키퍼가 막기 매우 어려운 사각지대를 일명 '야신 존' 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야신은 이쪽으로 날아오는 슈팅조차도 매우 잘 막았다고 한다.
50~60년대의 축구는 지금보다 경기당 평균 실점율이 2배 가량 높았다. 당시 포메이션에는 현대의 전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현대 축구만큼 정교한 수비를 구사할 수 없기에 공격수들의 골이 많이 터지는 것은 당연한것이다.
이와중 현대축구 골키퍼보다 훨씬 대단한 선방률을 보이는 야신의 실점률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기에 신급 골키퍼로 평가받는 것이다.
또한 그는 손이 큰 것과 힘도 매우 좋았는데 특히 어깨힘과 팔힘이 매우 강하여 단번에 센터 서클까지 공을 던질 수 있었다.
거기에 야신은 현대의 스위퍼 키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시대에 드물게 수비진을 모두 통솔하고 자신이 직접 에어리어 밖으로 나가 공을 쳐내거나 좋은 킥력으로 팀의 공격 방향을 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단한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인간인지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패널티킥 선방률'이다. 그는 선수시절 약 300번의 패널티킥 중 약 150번의 선방을 해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패널티킥 성공률(80%)보다 야신의 패널티킥 선방률(50%)이 더욱 기적같은 수치를 보여준다.
[야신의 여담]
1. 그는 1968년 레닌훈장, 1960년 사회주의노력영웅 이라는 제목의 훈장을 수여받은 적이 있다.
2. 1967년 브라질 축구 연맹이 주최한 산투스 fc와 fc 디나모 모스크바의 친선경기 후 승부차기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펠레는 10번의 시도 중 9번 성공(야신 선방)
야신은 50번의 슛중 25개의 슛을 막아냈다.
3. 낚시가 취미이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낚싯대를 챙겨오기도 했다.
4. 경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보드카를 마셨다고 한다. 이것의 영향이었는지 안타깝게 위암으로 사망한다
5. 코로나로 취소된 2020 발롱도르를 대신해 선정한 올타임 발롱도르 드림팀의 주전 골키퍼로 낙점받았다.
6. 60년대 초 심각한 슬럼프로 축구선수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지만 심기일전하여 결국 63년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야신의 말말말]
야신은 나보다 축구를 잘한다 - '산드로 마촐라'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했던 골키퍼 - '펠레'
야신은 역대 최고의 골키퍼 명단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나는 영상을 통해 그가 곡예사처럼 폴짝 뛰어 한 손으로 환상적인 세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야신은 아이스하키 골키퍼도 했다고 들었다. 그는 유일한 골키퍼 발롱도르 수상자이다. 검은 거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존재 그 자체로 상대팀에게 위협이었다. 킥오프 전부터 상대 선수들에게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것은 정말 큰 이점이다. - '이케르 카시야스'
[마무리]
이상으로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는 '레프 야신'에 대해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명언 중 한가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사각지대는 어떤 골키퍼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막을 수 있다. - '레프 야신'